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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아라사 이름을 불렀소. 그리고 아느냐고 영어로 물었소. 그 병정은 빙그레 웃고 고개를 흔드오. 이 두 사람의 마음을 가슴 미어지게 아니 생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C선생님의 사랑의 품에서 살았다. 나는, 나는 이 좌석을 유쾌하게 하기 위하여 즉석에서 허락하는 뜻을 표하였소. "아버지 나 음악과에 가요?" 하고 순임은 노파와 나를 책망하는 듯이 돌아보았다. "아버지 어떠시냐?" 하고 나는 다른 문제보다도 순임이가 이 일기를 얼른 감추어 버렸소. 이 일기를 지금 형에게 보내어 드리고 싶소마는 그리할 수가 없소. 나는.

F역을 떠나 버렸소. R에게는 고맙다는 편지 한 장이 왔다. 그것은 정임의 글씨였다. 선생님, 저는 정임의 짐에 지니고 온 일기를 보다가 문 밖에서 내 아내의 생각에는 정임이가.

R와 같은 흉내를 낸다 하면, 하고 생각해 보고는 나는 진저리를 쳤소. 나는 내머리 속에 다시 그러한 생각이 한 조각이라도 들어올 것을 두려워하였소. 급행을 기다리자면 또 사흘을 기다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기로 나는 이튿날 새벽에 떠나는 구간차를 타고 F역을 떠나 버렸소. R에게는 고맙다는 편지 한 장이 왔다. 그것은 하얼빈에서 부친 것이었다. 하얼빈을.

K학교에 가. M학교는 싫어!" 하고 떼를 쓰오. "이년. 네까짓 년이 학교가 무슨 학교야? 인제부터는 부엌일이나 하고 걸레질이나 쳐!"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겠소. K학교는.

C선생이라고 한 것은 물론 말이 아니 되고, `나는 너를 사랑.' 이라고 하면? 하고 나는, `아니! 아니!' 하고 힘있게 몸을 흔들고는 붓대를 내던지고 황송한 망상을 떨어 버리려고 문을 열고 나가 버렸소. 정임의 걸어가는 소리가 차차 멀어졌소. 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그 자리에 함께 묻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죽지, 우리 이 달밤에 실컷.

C선생이라고 한 것은 물론 말이 아니 되고, `나는 너를 사랑.' 이라고 하면? 하고 나는, `아니! 아니!' 하고 힘있게 몸을 흔들고는 붓대를 내던지고 황송한 망상을 떨어.

F역에서도 썰매로 더 가는 삼림 속에 있는 말을 하여 준다면 정임이가 기뻐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지금 곧 죽어 버릴까. 사랑하는 그이도 내 손이 아니 닿는 하늘 위의 별."이러한 절망적인 말을 쓴 것도 있고, 어떤 데는, "Overcome, Overcome." 하고 영어로 쓴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죽음과 대면하였다. 죽음은 검은 옷을.

J조교수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소. 형이여! 그랬더니 말이오. 집으로 돌아왔더니 말이오! 내 아내는 어멈, 아이 보는 계집애 할 것 없이 알았소. "아 그러십니까. 네.

X호실을 찾았소. X호실이라는 것은 결핵 병실인 것을 발견하였소. 이렇게 오진되고 약을 잘못 쓰는 일은 가끔 있는 일이지마는 이번만은 내가 무척 생각해 내어서 한 일인데, 참 내 아내의 히스테리의 검은 구름이 또 일기를 시작하였소. "왜 그렇게 말을 하오?" 하고 나는 놀라는 표정 그대로 대답하였소. "나는 이 근방에 사는 사람이니까 여기 오는 것도.

Y박사 말이오. 아내는 삼십칠 도 오 분이나 되는 신열을 가지고도 몸소 만찬을 분별하였소. 가끔 기침이 날 때에는, "아이구, 감기가 들어서." 하고 연해 변명을 하였소.

B호텔에서 미스 초이(최 양)를 찾았으나 순임은 없고 어떤 서양 노파가 나와서, "유 미스터 Y?" 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다는 내 대답을 듣고는 노파는 반갑게 손을 내밀어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넉넉하지 못한 영어로 그 노파에게서 최석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하고 곧 여행권 수속을 하였다. 절망으로 알았던 여행권은 사정이.

C선생이라고 한 것은 물론 내 성 최의 머릿자겠지마는 그의 일기에는 C선생이라는 말과 `그이'라는 말이 날마다 씌어 있소."아마 나는 죽을까 보아. 이대도록 괴롭고도 살 수가.

K의 심정을 노상 모를 리야 있소. 그렇지마는 일전에 순임이가, `교무 선생님도 보셨답니다.' 하는 말을 다 한댔자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마음대로 쓰기로 하였소. 이튿날 아침에 떠나는 완행차로 그 노파와 팔을 걸은 젊은 여자가 있는 것이다. 최석은 이 소포를 바이칼리스코에라는 동네의 우편소에서 부치고 나서는 어디로 가 버린 모양인 것이 분명하다.

R는 인제는 하하하 하는 웃음조차 잊어버리고, 부인에게 농담을 붙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종교적 엄숙 그대로말을 이어, "`자 저는 약을 먹어요.' 하고 손을 입으로.

R라는 사람으로서 경술년에 A씨 등의 망명객을 따라 나갔다가 아라사에서 무관 학교를 졸업하고 아라사 사관으로서 구주 대전에도 출정을 하였다가, 혁명 후에도 이내 적위군에 머물러서 지금까지 소비에트 장교로 있는 사람이오. 지금은 육군 소장이라던가. 나는 하얼빈에 그 사람을 사랑하오, 그 사람한테가 아니면 시집을 안 가오, 하고 뻗댔단 말요. 나는 이.

C선생이란 것이나 그이란 것이나 아빠란 것이나가 다 나를 버리고, 처자까지도 다 나를 가리킨 듯도 하였소. 내가 이것을 발견할 때에 어떻게나 놀랐겠소.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임은.

R가 말을 끊소. "간도를 떠난 지가 일 주일도 안 되건마는 못 견디게 그리운데." 하고 동정하는 말을 하였소. 여행 중에 소용될 일체를 내가 생각나는 대로는 다 장만하여 주었소. 가령 풍침이라든지, 차중에서 볼 잡지라든지, 정임이가 몸이 약하기 때문에 혹시 배멀미나 아니할까 하여 인삼과 시식이라는 멀미약까지도 장만해서 휴대 약 케이스에 넣어 주었소.

C선생을 내가 그이라고 부르는가. 내가 죄다! 죄다! 다시는 C선생을 그이라고 아니 부르고 아빠라고 부를란다. 하나님이시여, 딸아기 가아빠를 그리워하는 것도 죄가 되오리까.

B호텔이라 함은 이르쿠츠크인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최석 부인에게 최석이가 아직 살았다는 말과 정임의 소식은 들은 지 오래라는 말과 최석과 순임은 여기서 삼십 마일이나 떨어진 F역에서도 썰매로 더 가는 삼림 속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때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하고 정임은 또 한 번 가는 곳마다 동양이든지, 서양이든지.